▧ 문화산책 ▧ 최승훈 인천아트플랫폼 관장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이후로 각 지자체는 경쟁력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그래서 자랑거리는 더욱 강조하게 되고 새로운 자랑거리를 개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과거의 전통적 풍습과 역사적 근거를 세심히 살피게 되었고, 그러는 동안 우리나라는 예전보다 볼 거리, 읽을 거리, 즐길 거리, 알 거리가 많아졌다. 이런 상황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300만에 육박하는 인구를 갖는 인천이 국내에서 갖는 위상은 어떤 것일까? 모두들 알다시피 인천은 우리나라 근대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19세기 말 나라의 문이 여기서 열렸고 정치, 사회, 경제, 교육의 신문물이 인천이란 관문을 통해 들어오며, 교역과 통상의 중심을 이루었다. 그 당시 인천의 풍경은 매우 활발하고 신문물에 대한 관심은 경이감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 만큼 변화 가운데서 많은 인재들이 모인 인천은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겪으며 온갖 새로운 체험이 각인되고 누적된 곳임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개항기의 역사에 견주어 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한 과도한 중앙집중 현상은 인천의 발전에 치명적인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배출된 인재들은 더 이상 인천에만 마물러 있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인천은 과거의 주목받던 도시에서 퇴락한 도시로 기울며, 서울 가까이 있는 변방의 도시 이미지를 여태껏 쓰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인천은 그 어느 지자체들과 비교하여도 지지 않을 만큼 많은 자랑거리가 있다. 바다를 메워 넓혀진 면적, 바다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다리와 웅장한 빌딩, 국제적 교통망을 이루는 철도, 항만, 공항이 있는가하면 아시안 게임과 같은 국제적 큰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제반 시설과 국제적 빅 이벤트 보다 더 중요한 자랑 거리를 생각한다. 그것은 물질재가 아닌 정신재이다.

나는 웅장한 건축물과 기반시설의 성취를 폄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인천시민이 보여준 자세와 정신이라고 내세우고 싶은 것이다. 미술계에서는 인천에 아직까지도 미술관이 없다는 사실을 짚으며 그만큼 미술문화가 낙후한 것으로 평가해 왔다. 하지만 미술관이 없다는 것에 대한 시각을 우리는 달리 가져야만 한다. 십 수 년 전부터 각 지자체들은 경쟁적으로 미술관을 건립해 왔다. 또 얼마 전부터는 창작 공간 건립이 미술관마다, 또 심지어는 사설 갤러리들에 이르기까지 유행처럼 번져왔다.

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그것들을 되돌아보면, 대동소이한 내용의 것을 여러 지역에서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우리 인천에 '아직까지도 미술관 하나 없는 것'이 아니라, '이제껏 없던 단 하나의 미술관을 갖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위에서 언급한 창작 공간의 경우에 연결 지어 살펴보면, 나는 '인천아트플랫폼'의 예가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 공간을 갖기 위해 십여 년 동안 수많은 토론과 의견교환이 있었으며, 그 소통의 결과는 국내외 그 어느 미술문화공간들과 비교해도 그 뛰어남을 인정받는 '인천아트플랫폼'이라는 결과로 탄생했다. 근대 개항기 '창고(倉庫)'라는, 우리 역사의 한 기억을 담아두던 공간이 '창작 공간'이라는, 현대라는 시대성의 한 축을 생산하는 새로운 '創庫(창작공간)'로 탈바꿈 한 것이다.

이는 '인천'이라는 지역적 특성과 우리의 역사적 맥락 위를 걷고 있는 변화이기에, 다른 창작 공간과 차별화되는 대한민국에 '이제껏 없었던 단 하나의 창작 공간'일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미술관 건립에 대한 문제 역시 이와 같은 시점에서, 우리는 '이제껏 없었던 단 하나의 미술관'을 갖기 위한 충분한 준비 기간을 갖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