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사 주지 혜경스님


 

   
▲ 석탄일이 가까워서일까. 오색연등 아래 포행하는 혜경 스님의 표정이 맑다. 전등사는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10일 오전 10시30분 봉축 법요식을 갖는다.

"이 세상에서 참으로 존귀한 자는 바로 나입니다. 그럼 다른 나도 존귀하겠지요. 세상의 만물들이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이유입니다."
10일 부처님오신날을 맞은 전등사 혜경(慧 耕) 스님은 "부처님의 뜻은 중생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라며 "부처님오신날은 이날 하루 만이라도 부처님의 뜻에 따라 살기를 바란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부처님오신날, 출가일, 성도절, 열반일 등 불교는 4대 명절을 갖고 있다. 죽은 조상님의 영혼을 위한 우란분절은 5대 명절에 포함된다. 이 가운데 가장 큰 행사는 역시 음력 4월8일 부처님오신날이다. 혜경스님이 주지로 있는 전등사에서도 여러 행사를 진행한다.


"우리 전등사를 비롯해 전국 모든 사찰이 봉축법요식을 엽니다. 전등사는 저녁에 등을 켜고 강화와 인천 지역의 안녕을 빌며 제등 행렬을 할 예정이지요."
이런 행사를 통해 드러나는 화두는 '이고득락(離苦得樂)'이다. 모든 존재를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즐거움을 얻게 한다는 의미다. 고통을 잊고 즐거움으로 가는 길은 무엇일까.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어리석음과 욕망, 집착에서 발생합니다. 어리석음을 깨뜨리고 욕망을 다스리며, 집착에서 벗어나면 괴로움은 사라지고 말지요."
욕망, 집착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 혜경스님은 "모든 존재들은 나와 평등하고 나만큼 존중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사람 뿐 아니고 모든 만물에 적용된다.
"이 세상 삶은 유한한 것이며 모든 존재는 변하게 마련입니다. 변화하는 에너지의 내부적 조건은 '인'이고 외부적 조건은 '연'이라고 하지요. 이를 인연(因緣)이라 하는데 모든 것은 인연으로 생겨나고 인연이 다하면 소멸하는 것입니다."
그는 "내외부적 조건은 고정불변한 것"이라며 "그런데도 고정불변하고 싶어 집착을 갖다보니 중생의 삶이 괴로운 것"이라고 설명한다.
"중생들은 이룰 수 없는 일을 이루겠다는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변하는 인연을 인정하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에 집착하는 셈이지요. 따라서 중요한 것은 내외부 조건을 어떻게 만들어가느냐라고 할 수 있지요."
외부환경이야 어쩔 수 없지만 내부적 조건은 내 생각을 변화시킴으로써 가능하다는 말이다. 인간의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생각을 갖고 사는 태도를 '참선'이라고 할 수 있다.
"걸리고 매이지 않으면 자유롭습니다. 욕심은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실체가 있는 것으로 알고 매달려 살고 있습니다."
실체도 없는 욕심의 결과는 '공멸'이다.

   
 
"모든 존재는 홀로 살 수 없습니다. 세상을 지탱하는 법칙은 서로 의지하고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상관상의성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내가 잘났다고 나만 최고라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지요. 그 속에서 나오는게 뭡니까? 갈등이겠지요."
갈등이 쌓이면 대결을 하게 되고 대결이 깊어지면 전쟁이 일어난다. 전쟁은 같이 망하는 길일 뿐이다. 공멸을 막기 위해선 인연의 법칙성을 인정하고 모든 존재에 감사해야 한다.
"감사함 속에서 소중한 인연이 나옵니다. 불교에선 역행보살과 순행보살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중생을 부처의 세계로 인도해주는 사람들입니다. 역할은 다르지만요."
순행보살은 좋아하는 방식으로, 역행보살을 싫어하는 방식으로 각각 사람을 인도한다. 순행보살은 나를 즐겁게 인도하고 역행보살은 나를 괴롭게 인도하는 존재다. 역행보살은 그럼 나쁜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역행보살 역시 나를 부처님에게 인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악행을 행하는 사람을 보면 '나는 저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잖아요? 그럼 결국 악행보살을 보며 교훈을 얻는 것이잖아요.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여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혜경스님은 "무조건 모든 것에 감사하고 없으면 찾아서라도 감사해야 한다"며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도 찾아보면 감사할 '꺼리'가 있는 법"이라고 강조한다.
"연(緣)과 기(起)의 도리를 알고 꽃과 나무, 새와 짐승에게조차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나는 행복해지고 내 이웃들까지 행복하게 해줄 수 있지 않겠어요."
어리석은 마음에 기자가 세속적인 질문을 던졌다.
"스님! 불교는 사람이 죽으면 윤회에 따라 사람이나 짐승으로 태어난다는데 사실인가요?"
껄껄껄 웃던 스님이 우문에 현답을 해준다.
"그걸 알고 싶다면 한 번 죽어보십시오!"
한동안 웃던 스님이 다시 정색을 한다.
"죽음은 모양으로는 존재하지만 본질적으론 없는 것입니다. 사람에겐 인식할 수 없는 세계와 인식할 수 있는 세계가 있습니다. 인식할 수 없는 세계가 바로 죽음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호흡이 끊어진다는 말이다. 사람이 죽으면 분해된다. 그러나 땅에 묻건, 화장을 하건 작은 원소로 남게 된다. 원소는 인식할 수 있는 세계다. 원소는 다시 결합해서 물질이 된다.
"내가 태어나 호흡을 시작하고 호흡을 멈출 때까지만 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단지 수단일 뿐입니다. 나는 혜경이란 수단의 승려일 뿐 혜경이 과연 나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난해한 말씀이다. 그에 따르면 이름은 존재를 대표할 뿐, 존재의 정체성을 모두 다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내가 누군지 알려고 하기 보다는 내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생겨난 원인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 원인을 생각해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면 그 다음부터는 고통에 빠지지 않게 되지요."
스님은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매순간 극락과 지옥을 오간다고도 했다.
"불교엔 인간이 윤회하며 살아가는 세상인 6도가 있습니다. 천상, 인간세상, 아수라, 지옥, 아귀, 축생이 그것이지요. 아수라는 분노로 인한 괴로움의 세계, 축생은 어리석음, 아귀는 배고픈 고통을 가리킵니다. 극락은 즐거움의 세계입니다. 즉 우리가 살면서 즐거운 때가 바로 극락에 있는 것입니다."
극락과 지옥은 하늘이나 땅 밑에 존재하기보다는 우리가 겪는 의식의 세계 속에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분노하지 않고 궁핍하지 않으며 늘 즐겁게 산다면 그는 언제나 극락에서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줄곧 부처님의 말씀을 설법한 혜경스님이 전등사에 대한 생각을 내놓는다.
"저는 전등사 CEO고 강화군민, 인천시민, 나아가 모든 국민들이 전등사 주주입니다."
혜경스님은 "강화도는 마니산과 전등사로 대표되는 곳이고 국조인 단군부터 구한말 개항기까지 4천500년의 역사를 함축하고 있다"며 "모든 분들이 민족의 큰 자산인 전등사를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지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진국기자 freebird@itimes.co.kr


● 혜경은 …

-1985년 출가(세수 51세·법랍 26년)
-1993년 석림회 회장
-2003년 대구 장원사 주지
-2005년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재정국장
-2006년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총무국장
-2007년 대한불교 조계종 전등사 주지(현)
-2010년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