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하루 대부분 물 뜨는 일에 할애
아이들도 예외 없어'무용지물'된 학교
범죄 대상 되거나 악어에 목숨 잃기도
   
▲ 우물이 있는 마을의 풍경. 하도 주변 마을 주민들과 유목민들이 물을 받으러 오는 탓에 큰 물통에 물을 담아 두고 오전과 오후, 하루 두 차례 물을 보급하고 있다.


수도꼭지만 틀면 나오는 물.

바로 마셔도 손색이 없으며 따뜻하고 차가운 온도를 가리지 않고 펑펑 쏟아나오는 그런 흔하디 흔한 물.

'물 부족 국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우린 '물을 물 쓰듯' 하고 있다.

물이 아까운 줄 모르고 귀한 줄 모르다 보니 '물이 없어 죽는다'는 얘기는 그저 먼나라 얘기.

그러나 지구촌 곳곳에선 물이 부족해 고통받는 인구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가장 극심한 상태로 허덕이는 곳은 바로 아프리카 대륙. 그 중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구하고 있는 케냐를 다녀왔다.


▲암담한 현실

케냐산. 높이 5천199m, 면적은 15만㎢로 케냐 중부에 위치, 킬리만자로에 이어 아프리카에서 두번째로 높은 산이다.

이 산 꼭대기의 빙하수와 작은 하천들이 흘러 내려 길이 708㎞ 가량의 큰 강을 이룬다.

케냐의 젖줄 '타나강'이다.

이 강은 아름다운 자태 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바로 케냐 중부 원주민들에게 없어선 안 될 중요한 식수원이라는 것.

그 덕에 강 인근엔 많은 부족과 유목민들이 흩어져 사는데 특히 강 하류에 위치한 가르센(Garsen) 지역엔 더 많은 원주민들이 눈에 띈다.

비옥한 옥토로 심는 작물마다 풍년을 이루기 때문이다.

식수와 농업용수 등으로 여러모로 유용하게 쓰이는 타나강.

그러나 이 강은 원주민들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기도 하지만 목숨을 앗아가기도 하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1월부터 3월까지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건기엔 주민들의 마실 물 '생명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반면 4월부터 석달간 지속되는 우기엔 한반도 일년 강수량(600~1천400㎜)만큼의 비가 쏟아져 강이 범람, 수십~수백명의 주민들을 집어 삼키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을 해치는 악어도 떼지어 살며 호시탐탐 물을 길러오는 아이를 노리고 있는 곳.

'양날의 칼' 같은 타나강에 기대어 살 수 밖에 없는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단 한가지, 우물이다.

 

   
▲ 루 알리 마을의 전경, 마을 공터에 마른 풀과 나뭇가지들이 널려 있다.


▲맘껏 공부하고 놀고 싶어요

오전 6시 주민 300여 명이 모여 사는 빌리사(Bilisa) 마을의 하루가 시작된다.

이들의 일상은 모두 같다.

아침을 간단히 만들어 먹고 집에서 키우는 염소와 양의 젖을 짠다.

가축의 밥과 물을 챙겨준 뒤 9시쯤엔 모두 물통을 들고 5㎞ 가량 떨어진 타나강으로 향한다.

혈기 왕성한 젊은 청년들도 족히 왕복 2~3시간이 걸리는 거리.

무게가 만만찮은 5ℓ들이 물통을 지고 기온이 40도 가까이 오르는 땡볕을 걷기란 여간 힘든일이 아니다.

어린이와 노인, 여성들이라고 예외는 없다.

오히려 일을 하는 남성들보다 물을 길어 와야 하는 책임이 더 막중하다.

그 탓에 이들은 하루에 꼬박 4시간 가량을 물을 퍼나르는 일에 쓴다.

가축들이 물을 많이 마시는 날엔 해가 떨어지기 전에 또 한차례 물을 떠와야 한다.

자주 출몰하는 악어로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된 마을 주민도 여럿, 늦은 시간에 홀로 다니는 여학생들은 몹쓸 범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인근에 있는 빌리사 초등학교는 있으나마나한 무용지물.

어린아이들은 학교 갈 시간도 없이 물 뜨는 일에 하루를 보낸다.

마케나(11)양은 "학교에 다니며 공부하고 싶어요. 왜 우리는 물 뜨는 일에만 매달려야 하는건지 모르겠어요"라며 "자유롭게 뛰어 놀며 공부만 할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 물을 보급 받으러 온 소녀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편히 음식을 만들고 농사를 지을 수 있다면…

빌리사에서 차로 40여 분 떨어진 루 알리(Nur Ali) 마을.

빌리사 마을과 마찬가지로 타나강에 적을 두고 생활하는 유목민이다.

주민은 100여 명 가량으로 이들은 지난 2010년 이 곳에 터를 잡고 가축을 기르며 생활했다.

그러나 지난해 알 수 없는 수인성 질병으로 소와 양, 염소 50여 마리를 잃었다.

남은 것은 염소 몇 마리 뿐.

이들은 생계를 위해 수박농사를 짓고 있다.

루 알리 마을 사람들은 빌리사 주민들보다도 바쁜 하루를 보낸다.

수박이 열매를 맺기 전까지 워낙 물을 많이 먹는 품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진흙같이 끈적한 강 바로 옆에선 작물이 잘 자라지도 않는다.

결국 이들은 강에서 1㎞ 가량 떨어진 곳에 밭을 일구고 하루 2~3차례 물을 주며 어렵사리 농사를 짓고 있다.

펌프같은 용수 조달 방법과 도구가 있을리 만무.

이런 이유로 주민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밥먹는 시간을 빼곤 돌아가며 물을 퍼오는데 할애한다.

캄 게루(33)씨는 "양수기와 배관시설이 필요해요"라며 "또 건기엔 강물도 많이 말라 흙탕물이 되기 일쑤여서 정수시설도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곳에 정착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도구와 장치가 있으면 좋겠지만 다른 무엇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우물입니다. 우물만 있으면 언제든 편히 음식을 만들고 농사를 지을 수 있을테니까요"라고 호소했다.


"제발 우물 좀 파주세요."

머나먼 동아프리카 케냐 원주민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지난 2월 285만 인천시민의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가르센(케냐) = 글·사진 조현미기자 ssenmi@itimes.co.kr



● 케냐는
공식국가명:케냐 공화국
수도:나이로비
인구:3천34만 명
면적:58만 2천646㎢(한반도의 2.7배)
주요도시:몸바사, 나쿠르, 키수무
주요언어:영어(공용어), 스와힐리어(통용어)
종교:기독교(30%), 토착신앙(약 50%), 회교, 힌두교(소수)
주요민족:키쿠유족, 루오족, 루히야족, 캄바족, 칼렌 진족 등 43개 부족
통화:케냐실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