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시인·인천 문협회장
   
 


우리나라 여러 도시들은 나름대로 내세울 수 있는 상징물들이 있다. 그래서 외지에서 오는 방문객들이 꼭 둘러보고 가곤 한다. 예를 들면 목포에 가면 유달산이 있고 광주에는 무등산이 있다. 부산에는 해운대가 있고 강릉에는 경포대가 있다. 부여에는 낙화암이 있고 서울에는 왕궁과 한강과 남산이 있다. 그런 것들은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니고 우리의 역사와 수많은 이야기가 얽혀 있어 많은 문학인들의 소중한 문학적인 소재가 되기도 한다.

우리 인천에도 방문객들이 보고 싶어 하는 상징물들이 있기는 하다. 인천공항이라든지 인천대교, 아라뱃길은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무언가 허전한 구석이 있다. 오랜 역사적 흔적이 없다. 이제 막 만들어진 볼거리일 뿐이다. 그나마 월미도와 자유공원은 개항의 흔적을 간직한 옛이야기가 서려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도 백년 남짓 이야기들뿐이다. 좀 더 오랜 이야기를 담은 문학산과 소래산이 있기는 하지만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고 인천시민들도 역사적인 명산으로 만들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인천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굳이 찾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인천에도 오랜 역사를 지닌 명물이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숨겨져 있다면 한번 세상에 얼굴이라도 내밀게 해 보는 게 어떨까. 대공원에서 만의골 후문으로 나서면 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장수동 은행나무가 있다. 인천시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된 나무이다. 너무나 아름답고 웅장해서 많은 시민들이 구경하고는 감탄하는 나무이다. 수령도 800년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전국의 은행나무 중에는 가장 아름다운 노거수일 것이다. 이 은행나무가 고작 인천시 기념물 12호라니 너무나 억울하다. 당연히 대한민국 천연기념물에 등재돼 가장 아름다운 은행나무로 황제자리에 올라야할 나무를인천시민들은 너무나 꼭꼭 숨겨 두고 있다.
전국 은행나무 중에 천연기념물로 등재된 나무는 20여 수이다. 그중에 수령이 가장 오래된 것은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0호)로 1100년 쯤 되고 높이는 67m 정도 된다. 수령이나 나무높이로는 최고로 친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거치다 보니 불구가 되어 있다.
가장 존경을 받는 은행나무는 서울 문묘 은행나무(천연기념물 59호)이다. 문묘 경륜당 경내에 있는 은행나무로 나이는 400살 정도이다. 이 역시 모양새는 장수동 은행나무를 따라올 수 없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 중 장수동 은행나무처럼 수령이 800년 정도이거나 이에 못 미치는 나무들도 많다. 강릉 장덕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166호)는 수령 800년으로 수형이 아름답다고 칭송되지만 같은 나이의 장수동 은행나무보다 격이 낮다. 은행나무 중 가장 아름다운 나무라고 칭송받고 있는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167호)도 수령이 장수동 은행나무와 비슷할 것으로 보이나 장수동 은행나무에 비해 균형적인 아름다움에서 미흡하다.

안동 용계리에 있는 은행나무(천연기념물 175호 수령 700년)를 비롯해 구미 농소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225호 수령 400년), 금릉 조룡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00호 수령 420년), 청도 대전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01호 수령 400년), 의령 세간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02호 수령 600년), 화순 야사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03호 수령 500년), 담양 봉안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482호 수령 500년) 등은 나이에서도 장수동 은행나무를 따라올 수 없지만 수형의 아름다움에서도 완전히 격이 다르다. 다만 이들 나무들은 민간신앙 대상이라든지 주민들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는다든지 등의 이유로 천연기념물이 된 것 같다.
만일 장수동 은행나무가 천연기념물로 등재되는 날이면 은행나무 중 가장 아름다운 나무로 뽑혀 황제로 등극하게 될 것 같다.
인천의 역사를 껴안고 800년을 숨어 산 황태자 장수동 은행나무가 등극하면 인천을 방문하는 사람은 모두 장수동을 꼭 둘러 은행나무를 친견하고 가려고 할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 시민들이 지금부터 발벗고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