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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조 전성기 뒤에 조선은 三政(삼정)의 紊亂(문란), 세도정치 등으로 국가 행정과 공공성이 붕괴되면서 결국 망국의 길로 가게 된다. 이유가 뭘까? 영·정조가 만든 국가 시스템이 왜 그렇게 쉽게 붕괴된 것일까? 결론은 시스템 보다는 人治(인치)에 의존한 결과라고 봐야 한다. 영·정조의 탕평 등 개혁정책은 국가시스템으로 정착되지 못해 소수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세도정치가 만개한 것이다. 시스템에 의한 운영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임금의 리더십에 의해 유지됐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공백은 기둥이 무너진 것과 같다. 즉 사람이 바뀌어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강건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체제화·시스템화해야 한다.

역사를 바라보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성공적인 체제화의 예로 김유신 장군과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들겠다. 신라에 흡수된 금관가야의 왕손 김유신은 신라의 소외된 소수파 귀족으로 그럭저럭 안일하게 생을 즐길 수도 있었지만 삼국 통일이라는 국가시스템을 남겼다. 통일신라가 없었다면 고려도 없고 조선도 없다. 지금 과거의 몽골족·거란족·만주족을 인종학적으로 비슷한 종족이라고는 볼 수 있어도 언어·역사·문화·정신을 공유하는 한 민족이라고 볼 수 없는 것처럼,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체제가 그대로 유지됐다면 하나의 민족이라는 정체성은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영·정조 이후 조선왕조 몰락의 끝자락에 태어난 박정희 대통령은 원조에 의존하는 빈약한 나라의 시스템을 건실한 산업국가시스템으로 바꾸어놓았다. 그 시스템이 이후로 지속가능했고 후기산업사회로까지 발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즉 후진적인 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되지 않으면 사회가 발전할 수 없으며, 섣불리 잘못 바꾸면 순식간에 붕괴된다.

이러한 국가시스템이라는 관점에서 전력생산시스템에 대해 생각해 보자. 현재 저렴하고 우수한 전력생산시스템을 떠받치는 기둥은 원자력 발전과 화력 발전이다. 즉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저비용·고품질의 대용량 전력을 생산하지만 방사성 폐기물이 발생하는 원자력발전, 그리고 저비용 고품질의 대용량 전력을 생산하지만 자원량이 제한된 화석연료를 사용하며 온실가스가 발생하는 화력발전에는 분명히 장단점이 있다. 그러나 그 단점은 관리가능하며 장점의 혜택은 크다. 이를 신재생에너지체제로 바꾸는 것은 장기적인 과제이며 국가의 운명이 걸린 문제이다.

앞으로 상당 기간 신재생에너지는 원자력과 화력으로 품어줘야만 생존할 수 있다. 그 시간이 30년, 100년 걸릴 수도 있다. 그때까지는 기다리고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상당부분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반영돼 있다. 탈핵운동가들이 말하는 전기요금 2배 상승이 실제 3~5배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국민에게, 국가경제에 삼정의 문란과 같은 가혹한 정치로 다가갈 수도 있다.

원자력 발전이든 신재생에너지든 반대의견을 가진 분들이 있을 수 있고, 인공적인 시설을 건설하는 사업추진이라는 관점에서 같은 것이다. 한수원의 원전사업이 가로막히면 결국 신재생에너지분야를 개척할 힘도 축적되지 않는다. 50년 뒤에 한수원이 신재생에너지 회사가 되기를 바란다면 탈핵운동가들은 지금 한수원의 원전사업을 도와야 한다. 특히 원전계속운전을 도와야 한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의 천년대계를 위한 전력생산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정부, 시민사회, 한수원이 협력해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나가는 일이 최선의 방안이다.

/서홍기 월성원자력본부 대외홍보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