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메시지 왕따' 사건 발단 … 전교어린이회서 '사용자제' 자치법 제정
학교, 법활성화·캠페인 지원 … 우리말지키기 등 인성교육 강화 계획도
   
▲ 운유초등학교 학생들이 스마트폰 중독을 해결하기 위해'우리가 해낼 수 있어요'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운유초등학교

기특한 앱과 똑똑한 기능으로 잘만 사용하면 아이들의 학습 효과와 지능 발달에 도움을 주는 스마트폰. 하지만 이 유용한 문명의 이기를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하면 뇌 기능과 정서발달 장애는 물론 사회성과 인지·학습 능력을 저해하는 '괴물'로 된다. 전문가들은 자제력이 약하고 수용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의 경우 어른보다 중독성이 더욱 심각하다고 경고한다. 청소년기 스마트폰 중독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대부분 부모가 '내 아이도 스마트폰에 중독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아이가 하루 종일 스마트폰에 매달려 있으면 집중력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거나 기기를 마음대로 조작하는 것을 보고 기특하게 여기기까지 한다. 부모들은 스마트폰이 아이에게 좋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아이의 안전 확인을 위해 항상 옆에 있어야 할 친구라고 생각하면서도, 스마트폰을 떼어내기 쉽지 않다.

이런 문제를 아이들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 김포한강신도시에 2012년 개교한 운유초등학교(교장 김정덕) 학생들이 그 주인공이다.

 

   
▲ 가정에서의 스마트폰 사용 자제를 위해 엄마에게 실천약속을 다짐하고 있다.

▲스마트폰도 잠자는 시간 필요
이 학교 학생들은 지난 4월1일 오후 9시부터 스마트폰을 부모에게 맡긴다. 지난 3월31일 전교생 1105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전교 어린이회 총회에서 다짐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운유초교 전교 어린이회는 스마트폰 중독 예방을 위해 이날 총회를 열고 어린이회가 제정한 자치법 설명회·결의대회와 함께 스마트폰과 멀어지기를 위한 실험을 시작했다.

아이들이 자신과 한 약속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결의하는 날, 행사장엔 학부모 대표들도 참석해 아이들의 다짐을 지켜봤다. 김재경 운유초 학부모 회장은 "그동안 늦은 밤까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아이 때문에 걱정하는 부모님들이 많았다"며 "아이들 스스로가 이런 운동을 시작한다니 자랑스럽고 대견스럽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스마트폰 폐해를 인식하고 중독 예방을 위해 나선 것은 지난해 말 발생한 한 사건이 발단이었다. 뜻이 맞는 친구들끼리 밤늦게까지 스마트폰 문자를 주고받으며 한 아이를 '왕따' 시킨 것이 밝혀지면서다.
대책마련에 나선 학교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아이들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학교는 지난 3월 개학과 동시에 전교 어린이회 회장단을 교장실로 모이게 한 뒤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며,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고심하던 어린이회는 토의 끝에 지난달 5·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이용현황에 대한 설문조사에 착수했다. 이 조사를 통해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 학생 225명 중 104명(46%)과 45명(20%)이 각각 방과 후 2시간과 3시간 이상 게임, 인터넷, 메시지를 사용한다는 결과를 얻어냈다.

손다빈 어린이회장(6년)은 "일부 학생에게는 스마트폰 문자 메시지를 통해 '사이버 폭력과 왕따를 경험한 적이 있다'는 답도 있었다"며 "우리 학교 학생 자치법에 사이버 폭력과 스마트폰 중독 예방 방안으로 저녁 9시 이후 부모님께 핸드폰을 맡기고 아침에 받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스마트폰 사용 자제와 스마트폰에도 잠잘 시간을 주려고 자치법 준수를 결의하게 됐다"고 말했다.

 

   
▲ 김정덕 교장이 전교어린이회장과 면담을 하고 있다.

▲아이·가정·학교가 함께 하는 스마트폰 중독 예방
학교는 결의대회 이후 아이들이 자신과의 약속을 실천할 수 있도록 자치법정 활성화와 어린이회가 주관하는 캠페인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어린이회 주관으로 이달부터 매주 한 차례 '학생 자치법을 지키자', '스마트폰은 밤 9시에 부모님에게'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스마트폰 멀리하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같은 아이들의 노력에 학교는 스마트폰 중독 예방을 위해 무엇보다 가정과 학교가 참여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학부모회 협의를 통해 지난 9일 학년과 학급 학부모 대표 5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학부모 결의대회를 열었다. 학부모 동참을 이끌어 낸 것은 아이들의 결의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학교는 아이들이 약속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한 달간 지킨 사항을 스스로 기록하는 자기 점검표를 만들어 각 가정에 배포했다. 자기 점검표를 엄마나 아버지에게 확인을 받아 학교에 제출하면 평가를 거쳐 실천 우수학생에 대해 표창하는 등의 인센티브를 줄 계획이다.

이와 함께 스마트폰과 PC사용 시간을 줄이는 대신 가정에 신간 도서를 대여하는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가정 독서 프로그램'도 제공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학교는 1만3000권의 신간도서도 확보해 놓았다.

학교는 이참에 스마트폰 사용 증가로 훼손되고 있는 고운 우리말 지키기와 존대말 쓰기 등을 통해 인성교육을 강화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스마트폰 중독 위험성을 인식한 운유초 학생들의 실험이 주목을 받는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학교 현장에서 멀어져간 인성교육의 회복으로 이어질지 여부다.


김정덕 운유초교 교장 인터뷰-"꾸준한 교육·학부모 동참 중요"

"학부모와 함께 꾸준한 예방교육과 가정지도를 펼치겠다."

김정덕 교장은 "스마트폰을 처음 소유하기 시작하는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어 스마트폰이 어느새 아이들의 분신과도 같이 돼 버렸다"며 "학부모들이 부작용을 알면서도 아이들에게서 쉽게 스마트폰을 떼어놓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정부가 나서 청소년 스마트폰 중독 예방을 위한 여러 처방을 내놓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효과성이 달라진다는 점"이라며 "아이들 스스로 심각성을 깨닫고 사용을 절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장은 또 "조사에서도 스마트폰을 잠시라도 손에서 떼어놓기만 해도 '불안하다'고 답한 아이가 상당수였다"면서 "학교에서는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지만 집에 가서는 상황이 달라져 통제의 연속성이 떨어져 교육의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의 통제만으로는 아이들의 스마트폰 중독을 예방할 수 없다는 얘기다.

김 교장은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자치법규를 만들어 가정에서도 스마트폰 사용을 스스로 통제한다고 해 대견스럽고 자랑스럽기까지 하다"며 "학부모와 함께 스마트폰 등의 건전사용 문화 조성을 위해 꾸준한 예방교육과 가정지도를 펼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포=권용국기자 ykkwun@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