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굴지의 담배 제조사가 지켜야 할 기본적 원칙을 어겼고, 그 틈에 마수가 뻗쳤다.

역대 최대 규모의 면세 담배가 예정된 종착지인 해외로 수출되지 않고, 국내에 불법 유통되는 초대형 밀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1648만갑 담배 밀수' 사건의 개요다.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KT&G가 서로 다른 면세 담배의 용도를 멋대로 바꿔 판매한 사실을 확인했다.

'특수용 담배는 그 용도 외의 목적으로 판매해서는 안 된다'는 담배사업법 19조2항을 위반한 것이다.

엄연한 불법 행위였다.

대기업이 기본적 원칙을 지키지 않으며 4년 동안 판매한 담배 규모는 무려 2720여만갑.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을 웃도는 수치다.

일반 담배 가격에 붙는 세금이 60%이니, 단순히 계산해 봐도 이 담배 규모에서 면제된 세금만 무려 300억~400억원에 이른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했던가.

담배 밀수범들은 KT&G의 위법 행위를 교묘히 이용해 160억원이 넘는 범죄 수익금을 챙겼다.

KT&G에서 수출용으로 사들인 면세 담배로 세관의 의심을 피했고, 엄청난 양의 담배를 국내 시장에 몰래 유통하는데 성공했다.

2010년 작성된 기획재정부의 담배 제품 불법 유통 방지 시스템 연구 용역 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KT&G가 이번 사건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것도 확인됐다.

5년 전 부산에선 KT&G가 제조한 면세 담배 11만갑이 불법 유통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1648만갑 밀수 사건의 축소판이자 예고편이었다.

범죄 수법이 매우 유사한데다 KT&G에서 제조한 면세 담배를 이용한 범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KT&G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결국 대형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인천일보의 보도로 담배사업법 위반 사실이 드러난 KT&G는 이달 중 기획재정부로부터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최대 2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는데, 국내 담배 시장 질서를 어지럽힌 사건의 빌미를 제공한 행위에 대한 처벌 수위 치곤 너무 약하다.

유사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해선 처벌 강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각설하고, 이번 사건은 대기업이 기본적 원칙을 지켜야 경제 질서가 바로 선다는 교훈을 남겼다.

KT&G가 앞으로 기본적 원칙을 어기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고, 다른 기업들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박범준 사회부 기자